김일성, 김정일 동상 앞에서 목례하는 북한 주민들. 출처: 캐나다 한국일보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제5장 공민의 기본권리와 의무에서 '신앙의 자유'를 언급하며 헌법에서 이를

보장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이는 제5장 66조와 68조에 자세히 나와 있는데, 이를테면 66조에

'17살이상의 모든 공민은 성별, 민족별, 직업, 거주기간, 재산과 지식정도, 당별,
정견, 신앙에 관계없이 선거할 권리와 선거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거나 68조에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것을 허용하는것으로 보장된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68조의 후반 조항에는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할수 없다'라며

명목상 게재해 놓은 신앙의 자유에 대한 조항에서조차 단서를 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많은 탈북민들의 증언과 UN 및 국제 NGO의 북한 인권보고서, 김일성의 종교관, 전국적인 주체사상 신봉 및 헌법보다 위에 있는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 등을 통해 북한에서의 신앙의 자유는 사실상 없을 뿐만 아니라 박해의 대상임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번 포스팅에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자국 내 종교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기독교

 

(1). 조선그리스도교연맹

 

평양에 위치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본부 청사. 출처: 통일뉴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1946년 11월 28일 창립된 '북조선기독교연맹'을 모체로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창립 후 활동이 전혀 

드러나지 않다가 1974년 '조선기독교연맹'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1999년 다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북한의 종교관은 김일성이 “종교는 일종의 미신입니다. 예수를 믿든지 불교를 믿든지 그것은 본질상 다 미신을 믿는 것입니다”,

“종교는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입니다. 종교는 아편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발언한 데에서도 잘 나타나며, 

그로 인해 1960년대에는 종교 자체가 아예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시작된 남북대화를 계기로 북한에서도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그간 유명무실한 단체에 불과하던 이른바 ‘조선기독교도연맹’, ‘조선불교도연맹’,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등의 활동을

재개시켰고, 1980년대에 한국의 종교 단체가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보고 이들을

통일전선으로 포섭하기 위한 교류 확대를 목적으로 종교 시설의 건축을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1988년에는 봉수교회가 건립되었고, 1992년에는 칠골교회를 신축하게 되었다. 또한 1989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에 종교학과를 개설하였고, 2000년에는 평양신학원을 개원하여 목회자 양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대한민국과 서방의 종교 단체와의 교류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주로 북한지역에서 종교행사들을 개최하면서

북한이 필요한 물자나 설비 등을 지원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평양 만경대구역에 위치한 봉수교회. 출처: 오마이뉴스

 

평양 만경대구역에 위치한 칠골교회. 출처: 오마이뉴스

 

평양신학원. 출처: 통일뉴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중앙위원회에 위원장 및 부위원장, 서기장, 사무위원 등의 직책을 두고 있으며, 산하 부서로

국제부, 조직부, 종교부, 평양시위원회 등이 조직되어 있다. 현재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위원장은 강명철이다.  강명철 위원장은 

현재 최고인민회의 14기 대의원상임위원으로의 직도 겸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종교 단체가 정부의

관변 단체일 뿐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강명철 위원장. 출처: 노컷뉴스

참고로 강명철과 김정은은 친척지간인데, 아래의 표를 보면 그 관계를 알 수 있다. 

 

출처: 국민일보

잘 알려진 것처럼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반공주의자였으며, 어머니 강반석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어머니의 이름인 '반석' 자체가 

신약성경의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에서 따온 것이며, 강반석의 아버지 강돈욱은 칠골교회의 장로였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초대 위원장인

강양욱 목사는 김일성의 외종조부이며, 그 아들 강영섭과 손자 강명철이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위원장직을 이어오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기반에서 자란 김일성 및 그 일가의 기독교 박해 행보는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 북한에서는 평양에 위치한 두 곳의 교회 이외에 500여 개의 가정교회, 교역자 300여 명과 신도 1만 3천여 명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상당수의 탈북민의 증언과 북한으로 관광을 간 외국인 기독교인 등에 의해 실제 일상생활에서 

북한 주민들이 종교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북한은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에 더욱 경계를 하며 수위 높은 

탄압을 자행하고 있으며,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상당수의 사람들이 북한의 지하교회 신도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조선카톨릭협회 

 

북한 천주교의 공식 기구인 조선카톨릭협회 중앙위원회는 1988년 6월 설립됐다. 처음에는 조선천주교인협회라는 이름으로 

발족되었다가 1999년 6월 조선카톨릭협회로 개칭되었다. 2008년 기준으로 신자 4,000여 명에 사제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또한 상술하였듯이 신빙성이 낮은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1989년 7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평양에 유치하면서 축전 정치행사의 하나인 종교인 토론회와 교파별 종교의식을 

치를 장소 마련을 위해 1988년 10월 평양 선교구역 장충동에 성당을 건립했는데, 이것이 북한의 유일의 성당인 장충성당이다.

 

참고로 북한은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때는 김대중 대통령의 제안으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초청했으나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장충성당. 출처: 카톨릭뉴스

신부와 수녀는 없고 신도대표 2명이 미사를 인도하고 있는데, 미사는 매주 일요일 오전 9시와 10시, 11시 3차례 있으며, 매번

60∼70명의 신도가 참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설교 내용은 기독교 교리 해설보다는 주한미군 해설, 연방제 통일 실현 등

북한의 대남정책에 대한 지지와 반한, 반미전선에 치중되고 있다.

현재 조선카톨릭협회의 위원장은 강지영으로, 일반적인 종교인이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최고인민회의 14기 대의원 및 상임위원, 조선적십자회 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강지영 위원장. 출처: 통일뉴스

(3). 조선정교위원회

 

조선정교위원회는 북한의 종교 단체 중 가장 나중에 창설된 단체이다. 2002년 김정일이 러시아 극동 지역 하바롭스크를 찾아
러시아 정교회를 방문하고부터 북한에도 러시아 정교 성당 건립 문제를 논의했다. 이어 북한에 조선정교위원회가

2003년 9월에 발족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러시아 정교회 종사자 양성을 위해 모스크바신학교에 4명의 사제 유학생을 보낸 바 있다.

2006년에는 평양에 '정백사원'을 건립하였다. 

 

발족 당시 위원장은 허일진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러시아 정교 사제들과 환담하는 김정일. 출처: 통일뉴스

 

정백사원을 둘러 보는 김정일. 출처: SPN 서울평양뉴스

 

정백사원. 출처: 통일뉴스

 

2. 불교

 

(1). 조선불교도연맹

 

조선불교도연맹은 1946년 12월 26일 결성된 '북조선불교도연맹'을 모체로 한 불교 단체이다. 여타 다른 종교 단체와 마찬가지로

1971년까지 활동이 거의 없다가 남북대화가 시작되는 1972년 현 명칭인 '조선불교도연맹'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은 1980년대 들어 해외동포 종교인들을 초청하여 이들과 종교인 회담 및 반한 종교인 집회를 갖는 등 통일전선전략에 치중하였고

북한 내 '조선종교인협의회' 등 대외용의 종교인 단체를 결성하기도 하였다. 조선불교도연맹 또한 이 기구의 가입 단체이자 

대남 기구인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구성 단체이다. 조선불교도연맹은 남북 불교 접촉·교류의 창구 역할을 하기 위한 대외선전용 

성격이 매우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불교도연맹은 중앙위원회와 지역 사찰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89년 승려 양성을 위한 불교 학원을 설립했다. 주요 

사찰로는 묘향산의 보현사, 평양 대성산의 광법사, 금강산의 표훈사 등 65개의 사찰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려는 300여 명, 

신도는 1만여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상술하였듯이 이는 정확한 통계 수치가 아니어서 신빙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묘향산 보현사. 출처: 오마이뉴스
평양 정릉사. 출처: 통일뉴스

현재 조선불교도연맹의 위원장은 강수린이며, 다른 종교 단체의 위원장과 마찬가지로 최고인민회의 14기 대의원 및 상임위원을 

역임하고 있어 정치인으로의 지위 또한 가지고 있다. 

 

강수린 위원장(우측). 출처: 조선신보
강수린 위원장. 출처: 불교닷컴

3. 천도교

 

(1).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 

 

1946년 2월 1일 소련군정의 인가를 받아 설립된 ‘천도교 북조선종무원’을 모체로 하여 탄생하였다. 천도교 청우당이 1946년 2월 8일 창당된 이래 현재까지 계속 존속해 오고 있는 반면, ‘천도교 북조선종무원’은 1949년 사라졌다가 1974년 2월 15일 현재의

조선천도교회 중앙지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현하였다.

 

천도교 청우당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을 참고

2020/11/23 - [북한의 정태/정치] - <북한의 권력 기구> 2. 당 조직

 

이 단체는 1970년대 재출현 이후부터 대남선전활동에 이용되고 있으며, 1986년 4월 천도교 창도 126주년 기념행사를 처음으로

개최한 후부터는 해마다 북한의 대외정책을 지지·옹호해 오고 있다. 실제로 조선천도교회는 중요 행사에서

“김일성, 김정일의 영도를 받들어 나가야 천도교의 이념이 구현된 지상천국의 염원을 실현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김일성 부자세습체제의 당위성을 부각하기도 했다.

 

현재 북한 내 천도교인은 약 1만 5천여 명, 교당은 52개가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조선천도교회는 우리나라의 사건·사고와도 연관이 많이 되어 있는데, 

육군 중장 예편 후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제7대 천도교 교령을 맡았던 최덕신이 1986년 북한으로 월북하여 1989년 3월

천도교 청우당 위원장, 조선천도교회 위원장, 같은 해 5월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천도교 남북 합작을 내세우며

우리나라를 압박한 바 있다. 최덕신 사망 후 그 아내인 류미영이 조선천도교회 위원장을 지냈다. 그 아들인 최인국도 2019년 월북하였으며,
1997년 8월 천도교 24대 교령을 지냈던 오익제 또한 월북하여 2012년 9월 1일 북한에서 사망하였다.

 

최덕신. 출처: 중앙일보
류미영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노동신문>>. 출처: 뉴시스

 

오익제 전 조선천도교회 고문. 출처: 통일뉴스
최덕신·류미영의 차남 최인국. 출처: 아시아투데이




참고문헌

국가정보원. (2019). 「북한법령집. 상」. 

미국 국무부. (2020). 「2019년도 국제종교자유보고서: 북한」. 

통일교육원. (2020). 「2020 북한이해」. 

통일교육원. (2016). 「북한 지식 사전」.

통일연구원. (2020). 「북한인권백서 202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천도교회중앙지도위원회', '조선카톨릭협회'. 2020년 1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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