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시간의 흐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리고 각각의 세대는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특정한 성향을 가지며, 같은 요인에도 다르게 반응한다.

 

이러한 인류보편적인 변화는 북한에서도 당연히 적용되는 바이며,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북한의 세대 구분'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출처: the300


 

▣ 북한의 세대 구분

 

세대 혁명 1세대 혁명 2세대 혁명 3세대 혁명 4세대
활동시기 및 출생년도 항일무장투쟁 참가자 한국전쟁, 전후복구 참여자 50년대 중반~70년대 중반 출생자 7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
지도자 김일성 김일성 김정일 김정일
특징 - 정규교육 못 받음

- 사상성 강함
- 정규교육 못 받음

- 사상성 강함
- 일제폭압과 전쟁 겪지 않음

- 정규교육 받기 시작

- 김정일 당사업 개시時 출생함

- 성장기 물질적 혜택 받음
- 일제폭압과 전쟁 겪지 않음

- 정규교육 수혜자

- 김정일 후계자 확정 이후 출생함

- 성장기 물질적 혜택 받음. 그러나 고난의 행군을 겪기도 함

※자료: '김정일 시대 권력엘리트 변화', 2009년 김갑식(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정일 시대부터 북한은 세대를 구분할 때, 주체사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은 '사회와 역사 발전에서 차지하는 해당 역사적 시대의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 특히는 청년들의 사회적 활동을 기본으로 하여 규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쉽게 풀어 설명해보면,

주체사상 관점에서 '1세대, 2세대는 조국을 광복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를 건설하는데서 위훈을 세운 세대이며(1세대 2세대의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 3세대, 4세대는 그것을 튼튼히 고수하고 사회주의 제도를 공고히 발전시키며 옹호·고수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세대(3세대 4세대의 인민대중의 지위와 역할)'로 구분되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세대 구분에서는 단순연령효과(age effect)보다 동년배효과(cohort effect)를 기본으로 하여 역사적 경험을 중요한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다.

※동년배효과(cohort effect): 일정 단위로 구분한 출생집단의 특징들을 기술하고 설명할 때 나타나는 효과를 말한다. 다른 시기에 출생한 각 집단은 심리, 사회, 문화적 특성에서 서로 다른 차이를 보이며 이를 각기 다른 동년배간의 효과라 한다.

 

북한의 이러한 세대 구분은 몇몇 부분에서 모호한 점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1세대 항일빨치산 세대, 2세대 한국전쟁 참전세대, 3세대 전후세대, 4세대 고난의 행군 세대' 정도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장마당세대(1980~90년대 출생)

 

출처: 조선중앙TV 캡쳐

전문가들은 북한의 청년 세대를 ‘장마당 세대’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은 1980-90년대에 태어나 어린 시절에 ‘고난의 행군’을 겪었으며, 부모 세대와는 다른 성향을 띄고 있다.

 

장마당 세대가 부모 세대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노동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보다 돈벌이에 관심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 문화에 노출이 많이 되었으며, 시장경제 체제에도 상대적으로 익숙한 세대라고 볼 수 있다.

 

탈북민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장마당 세대가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지만 체제에 불만이 많다고 한다.

오랜 군 복무기간 성분문제가 이들의 대표적인 불만사항이다.

북한의 군 복무기간은 10년이며, 장마당 세대는 이 기간 동안 장사를 통해 벌 수 있는 액수를 떠올리며, 자기 인생을 소모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북한은 전체 주민을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 등 3계 계층 51개 부류로 나눴기 때문에, 이에 따라 출신 성분이 나쁜 젊은이는 아무리 똑똑하고 공부를 잘 해도 대학에 가거나 좋은 직장에 갈 수 없다.

 

현재 장마당 세대는 약 2천500만에 달하는 북한 인구의 14%에 해당되는 35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 세대교체와 간부 선발

 

출처: 연합뉴스

북한은 간부 등용에서도 세대교체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져 온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 시대에는 간부 등용에 있어 출신 계급이 무엇보다 중요시되었다. 당시에는 아직 인텔리 계급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노동계급, 고농, 빈농 출신들이 간부 선발에 있어 우대를 받았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 전문성, 능력, 학력을 중시하기 시작했고, 2006년 1월 김정일이 직접 "간부는 지식이 있어야 발언권이 서고 제 구실을 할 수 있고 공부를 하지 않아 지식이 없는 간부는 발언권이 설 수 없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지도자인 김정은과 여동생인 김여정이 서방국가인 스위스에서 유학을 한 점은 김정은 시대에는 이전 세대와는 또 다른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내는 바이다.

 

이번 8차 당대회에서 가장 주목받은 조용원

이번 8차 당대회는 북한이 간부들을 대상으로 '세대교체'를 단행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북한 권력의 핵심체이자 절대권력기관으로서 당의 모든 정책을 수립∙결정하는 정치국(Politburo) 구성원들의 평균 연령이 5년 전 당대회 때와 비교해 9세 정도 젊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이 등용되고 중용되는 간부들에 의해 어떠한 정책의 변화가 있을지, '세대 변화 측면'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 해당 게시물은 『현대 북한학 강의』 제2장 '권력구조와 엘리트'의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정리한 것임을 밝힙니다.


[참고문헌]

김당. (2021). '김정은, 북한 권력층 세대교체…9세 젊어졌다', UPI 뉴스, 1월 13일

이재원, (2018). ''N세대' 김정은, 상상 이상의 '새로운' 북한', 머니투데이, 5월 1일

최원기, (2020). '북한 '장마당 세대', 부모와 정치·경제 성향 크게 달라', VOA 뉴스, 9월 25일

장달중 외. 『현대 북한학 강의』. 서울:사회평론, 2013.

출처:연합뉴스

 

1인 집권체제인 북한에게 있어 권력의 승계과정은 '체제의 안정'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모두 알다시피 현재 북한은 3대째 세습 중이며, 이 과정 속에서 2번의 승계과정을 거쳤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김일성→김정일'로 '김정일→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 과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김정일 - 김정은 승계과정 비교

 

김정일과 김정은 후계구도 비교

 

차이점 (1):  '후계검증 기간'

김정일은 1973년 당 조직부와 선전부를 장악하고 1974년 정치국원에 임명됨으로써 내부적으로 후계자로 결정되었다. 그 이후 6년간의 후계 검증 기간을 거쳐 1980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에 피선됨으로써 공식적 후계자임이 대외적으로 공표되었다.

 

반면, 김정은 21개월이라는 매우 짧은 후계검증 기간을 가졌다. 2009년 김정은의 생일날인 1월 8일, 김정일이 그를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를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의 리제강 제1부부장에게 하달하며 후계자로 내정되었으며, 이후 21개월간 대외적으로 비공개 활동을 하다가, 2010년 9월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정과 당 중앙위원 그리고 인민군 대장 등 공식 지위에 선출되며 후계자로 공식 선포되었다.

 

 

왜 이토록 기간 차이가 나는 것일까?

 

 

- 김정일의 권력승계

김정일이 6년이란 긴 후계기간을 가진 이유는 대내외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 때문이다.

김일성이 권력승계를 대외적으로 최초 언급한 시점은 1971년 6월 24일 개최된 「조선사회주의 로동청년동맹」 제6차 대회에서 연설이었다. 하지만 김일성은 이보다 더 오래전부터 승계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김일성은 1956년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과 '8월종파사건'이 있은 이후, 소련과 동구권에서의 변화와 중국과 소련의 분쟁 등.. 혼란한 환경적 변화를 보며 권력승계문제를 염두할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은 이러한 대내외적 긴장상태를 자신의 권력강화개인숭배를 통해 극복하려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속에서 김정일은 김일성의 개인숭배 작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더불어 '갑산파사건'과 '김창봉·허봉학 사건'과 같은 2인자 자리를 둘러싼 다툼이 발생하면서 '혈연관계에 의거한 선위 방식'의 권력승계 계기가 앞당겨졌다.

 

 

- 김정은의 권력승계

김정은의 승계과정은 김정일때와 달리 매우 압축적이며 빠르게 이루어졌는데,  빠른 승계과정을 거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김정일의 건강악화로 평가된다.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고, 이와 같은 최고지도자의 급격한 건강악화는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승계과정의 속력을 높이게 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이 후계자를 내정한지 3년 만에 김정일이 사망한 사실로 보아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사회·경제적 상황 악화도 후계체제구축에 속도를 내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당시 북한은 경제적, 사회적 위기의 악화 그리고 대(對) 중국 의존도의 심화 등 대내외적 불안 요인들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었고, 이러한 상황은 김정은으로 하여금 3대 후계체제의 구축 속도를 빠르게 진행하여 유일적 지도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차이점 (2): 권력승계과정의 단계

북한의 권력승계 단계는 '호칭 등장 - 공식활동 - 외교무대 등장 - 현지지도(실무지도) - 진한 글씨체로 이름 게재(노동신문 등) - 노작 발표 - 당·정·군 최고 직위승계'로 구분할 수 있다.

 

승계과정 중, 공식활동을 개시한 시점도 두 과정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김정일의 경우 19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이 되면서 후계자로 공인되었고, 이후 공식적으로 김정일의 사진이 실린 건 1980년대였다. 즉, 후계자 지명 후 6년 후에야 공식적으로 얼굴이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반면, 김정은은 2010년 9월 28일 당대표자회에서 후계자로 공표되고 바로 당일 찍은 기념사진을 통해 노동신문 1면에서 모습이 공개되었다.

 

당·정·군 최고 직위승계과정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생존해 있었던 때에 최고사령관직(군)을 물려받았지만, 나머지 직책의 이양은 김일성 사망 이후에도 한참 걸렸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정일이 3~4년의 유훈통치 기간을 설정하였고, 당 총비서(당)에는 1997년 10월에, 국가기관 최고 직책으로 강화된 국방위원장에는 1998년 9월에야 취임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 직후, 2011년 12월 최고사령관으로 추대,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의와 제12기 5차 최고인민회의에서는 당 제1비서, 당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원장, 국방위 제1위원장 등 당·정·군의 모든 직위에 등극하며 초고속적이고 압축적인 권력승계를 이뤘다.

 

김정일의 경우, 20년 정도의 지도자 수업으로 리더십이 확고하고 고난의 행군으로 불릴 만큼 북한 경제가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에, 1998년 북한 경제의 추락세가 멈추고 4년 만에 비로소 김정일은 강성대국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정권을 공식 출범시켰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공식 출범은 4개월 만에 이루어졌으며, 이는 아직 확고하지 않은 리더십으로 인한 체제 동요를 차단하기 위해 조기에 출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김주수, 문은석, 윤희철. (2014). 김정일과 김정은의 권력승계과정 비교를 통한 남북관계 전망. 대한정치학회보, 22(2), 47-69.

송정호. (2005). 북한 권력승계문제의 쟁점과 전망: 사회주의 사례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현대북한연구, 7(3), 7-51.

서유석. (2013). 북한 권력승계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북한, 497(497): 94-100

권순철. (2012). "젊은 후계자는 북한을 어디로 이끌까", 주간경향, 1월 3일

백인주. (2015).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어떤 모습일까?", 유코리아뉴스, 3월 16일

엄기영. (2010). "김정일 16년 걸렸는데… 김정은 ‘권력접수’ 3년내 끝낼듯", 국민일보, 9월 29일
장달중. 「현대 북한학 강의」. 사회평론, 2013. pp.15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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