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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Ⅱ. 선군정치론

Ⅲ. 강성대국론

Ⅳ. 맺음말


1970년대를 거치면서 체계적인 사상체계의 틀을 갖춘

주체사상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독자성을 더해가며

북한 유일의 공식지도이념으로 공고화된다

 

주체사상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한 김정일은

새로운 통치담론으로

선군정치론과 강성대국론을 제시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새로운 통치담론의 등장 배경과

그 특징을 알아보고자 한다

추후 김정일의 통치담론에 이어

김정은의 ‘김일성ㆍ김정일주의’와 ‘김정일애국주의’를

차례로 살펴볼 예정이다


Ⅱ. 선군정치론

 

김정일 시대 북한 정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선군정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은 경제적 위기돌파를 위한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었다

 

김정일은 유례없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장기적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통하여 대중들에게 위기를 이겨내자는 정당화와

동원의 기제를 활용해야만 하였다

 

북한의 계간지 『철학연구』 1999년 1호에서는

이를 “군대를 중시하고 그를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는 정치“라고 정의하였다

 

“당과 군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군에 대한 당적 영도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선군정치론을 살펴보면

당과 군대는 혼연일체의 대상이지만,

결코 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지 않다

군대는 ‘당의 군대’로서 당의 영도를 받는

대상인 것이다

 

당ㆍ군 관계와는 다르게 군대와 인민은

‘진정한 혁명동지’의 관계로서

대체로 평등한 위치에 놓인다

 

또한 군대에 대한 인민의 사랑과 원호를 강조하는 데서

선군정치의 핵심목표를 발견할 수 있다

 

『철학연구』에 따르면

북한의 이론가는 정치방식이

제아무리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위력과 생활력이 저절로 배양되는 것이 아니며

위대한 정치가, 탁월한 혁명의 영도자에 의해서만

높이 발휘된다

 

그리고 그 위대한 정치가이자

탁월한 혁명의 영도자는 곧 김정일이라고 주장한다

수령과 당에 대한 군대의 무조건적인 충실성을

강조하는 선군정치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군대를 강화하는 데 선차적인 힘을 기울이는

선군정치가 북한에 등장한 데에는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체제 붕괴 원인에 대한

북한의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1989년의 루마니아나 1991년 소련의 사례를 보면서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도

당이 군대를 확고하게 장악하지 못하면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평양에서 발간된

『세계를 매혹시키는 김정일정치』에서는

지난날에는 군대가 다만

나라를 지키는 국방 수단으로만 간주되었으나,

김정일이 군대를 ‘혁명의 주력군’이자

나라의 기둥으로 새롭게 규정하였다고 한다

 

‘혁명의 주력군’이라는 말은

군대를 정치체제의 중심에 세운다는 뜻은 아니다

북한에서는 당을 ‘혁명의 참모부’로 간주하는데,

‘주력군’이 ‘참모부’를 영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선군정치는 군대가 당과 수령의 영도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지도와 대중의 결합’을 강조하며

궁극적으로 인민대중에 대한 당과 수령의 영도를

정당화하는 주체사관의 기존 논리체계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위기극복을 위한 정치담론이었던 선군정치는

체계화 과정을 겪으며

김정일의 실천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고,

2000년대 이후에는 선군사상으로의 격상을 시도하였다

 

선군사상으로 체계화하는 데는

혁명의 주력군 문제를 새롭게 밝히고

주체사상과의 관계를 논리적ㆍ이론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선군정치가 선군사상으로 격상되면서,

북한은 과거 마르크스-레닌주의가

경제우선에 머물렀으며,

선군사상은 이를 극복하고 선행이론과 다르게

“주체사상에 기초한 군사중시사상을 제시하고

군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어야 한다는

전혀 새로운 혁명공식으로서의 군사선행,

군 건설선행의 원칙, 원리를 제시”했다고 설명한다

 

주체사상의 틀 안이지만 선군정치에서는 나아가

기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상적 토대로까지 선군사상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2001년 미국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더욱 심화됨에 따라

북한은 선군정치에 더욱 집착하고,

이를 ‘만능의 보검’으로까지 내세우게 된다

 

김정일의 선군사상은 결국 2009년 4월

헌법 개정에서 주체사상에 더하여

공화국의 지도지침이 되었고,

주권에 관한 내용도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와 모든 근로인민’에서

‘로동자 농민 군인 근로인테리와 모든 근로인민’으로

수정되었다

 

마침내 선군사상이

김정일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정립된 것이다


Ⅲ. 강성대국론

 

1995년부터 1997년까지 3년간

유례없는 자연재해에 시달렸던 북한은

1998년에 들어 어느 정도 벗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새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대외적으로 유리한 방향으로 정책을 전개하면서

북한에서는 미래에 대하여 비교적 낙관적인

강성대국론이 등장하였다

 

강성대국론은 1998년 8월 22일자

《노동신문》 정론을 통하여 제시되었다

‘주체의 사회주의강성대국’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이 정론에서는

주체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혁명적 수령관’이 강성대국론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리가 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 정론이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98년 8월 31일 북한은

광명성 1호’ 인공위성 로켓을 발사하였다

 

따라서 북한의 강성대국 건설 구상 천명은

인공위성 발사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인공위성은 비록 궤도에 안착하지 못하였지만,

북한은 광명성 1호의 발사가

강성대국건설의 첫 포성’이었다고 주장하였다

1998년 9월 8일 축제 분위기 속에서

김정일은 국방위원장 직에 재추대되었다

 

이후에도 북한은 계속 ‘강성대국’ 건설을 강조하였으나

2012년경부터는 ‘강성국가’라는 표현이

이를 대체하는 경향을 보였다

 

2012년 신년공동사설에서는 ‘강성대국’과 ‘강성국가’를

혼용하고 있는데,

2013년 김정은의 신년사에서는

‘강성국가’만 사용하고 있다

이는 ‘대국’이라는 표현이 북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 뒤늦게나마

고려된 결과로 보인다

 

한편 김정일 시대에 강성대국론이

주체사상을 대체하였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북한 현실과 괴리가 있다

 

이 주장의 근거로 붉은기사상, 선군정치,

강성대국 등이 그 대안으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스탈린식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의 현실에 맞게,

그리고 김일성ㆍ김정일의 개인 절대 독재에

적합하게 수정한 고도로 정교한 논리체계인

주체사상과 일반대중을 선동하기 위하여

제시하는 ‘정치구호’는 결코 동일시될 수 없다


선군정치는 대내외적 위기를 극복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김정일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북한은 경제난과 안보위협이라는

이중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선군정치를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정일에게는 위기 돌파책으로 내세운 선군정치 외에도

낙관적인 미래를 위한 통치담론이 필요하였다

그렇게 등장한 강성대국론은

수령 중심 체제를 한 번 더 강조하고 있고,

김정은 시대에 이르러서는 강성국가론으로 수정되었다

 

순수이데올로기로 격상된 주체사상은

추상화되었고,

현실 상황에서 정당화와 동원의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따라서 1990년대 체제위기의 북한에서

고도로 추상화된 정치사상 대신

현실에서 정당성을 설파하고

위기극복을 위한 노력과 의지에로 동원하는 역할은

주체사상에 뿌리를 둔 하위 정치담론들의

몫이었던 것이다

 

 


【 참고문헌 】

 

김근식. “김정은 시대의 ‘김일성-김정일주의’: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의 추상화”. 『한국과 국제정치』 제30권 제1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pp.65-92.

장달중, 『현대 북한학 강의』, 사회평론, 2020, pp.19-26.

 

네이버 지식백과, https://terms.naver.com/, ‘선군정치’ (접속일: 2021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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