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포스팅에 게재된 모든 사진은 북한헤럴드 편집진이 직접 촬영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저희 북한헤럴드 팀이 판문점 견학을 다녀왔습니다.

13개월 만에 재개된 판문점 견학, 이번 포스팅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갈 수 있는

가장 최북단인 판문점에서의 짧은 견학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통일부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홈페이지 캡처

판문점 견학은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홈페이지에서 최소 2주 전에 신청을 해야 갈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6일부터 13개월 만에 다시 판문점 견학이 재개되었는데, 기존의 복잡한 신청 절차가 간소화되었습니다. 

기존에는 30~40명의 단체 지원만 가능했었지만,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개인 및 가족 단위의 신청도 가능해졌으며 

통일부, 국방부, 국정원으로 나뉘었던 견학 신청 창구가 통일부 산하 견학지원센터로 일원화됐습니다.

 

바뀐 절차로 인해 저희 북한헤럴드 팀도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다만 현재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견학 신청 인원이 제한되어 있는데, 인기가 많아 자리가

금방금방 차서 최대한 빨리 신청해야 합니다.

마치 수강신청과 같았다고...

 

새벽부터 출근하시는 통일부 직원분들 존경합니다.

 견학 당일에는 파주시 문산읍에 위치한 판문점 견학 안내소에 견학 시간 50분 전에 도착을 해야 합니다. 

그 날 견학의 제일 처음 순서였던 저희는 무려(?)  아침 7시 30분에 영하 8도의 추위를 뚫고 경의중앙선 문산역에 집결하였습니다.

문산역에서 택시를 타고 10~15분 정도 가면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내려

다시 10분 정도를 걸어가면 견학 안내소가 나옵니다.  

저희는 해와 달이 동시에 뜨는 신비한 광경을 체험하며 무사히 이 곳에 도착했습니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내부의 편의시설. 멀리 영롱한 달빛이 보이는군요.
판문점 견학 안내소를 향해가는 길. 마치 동트는 실크로드에 와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견학 안내소에 도착하면 간단한 신분 확인과 함께 판문점 안내 영상을 시청하게 됩니다. 

또 견학 동안 착용해야 할 목걸이(?)도 지급해줍니다.

 

견학 동안 차고 있어야 하는 목걸이. 신분 확인을 대신한다고 하네요.

한 번의 견학 타임에는 버스 두 대가 이동해서 동선이 겹치지 않게 코스를 진행합니다. 

 

통일부 판문점 견학 지원센터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견학 코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코스는 이렇지만, 현재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버스 두 대의 인원이 

동선이 최대한 겹치지 않게 하는 견학 코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통일부 판문점 견학 1호차를 타고 1번 국도(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평안북도 신의주에까지 이름)를 달려 민간인통제선을 지나 

남방한계선 부근에서 다시 JSA 경비대대의 군용 차량으로 환승하여 판문점까지 이동하였습니다.

이동 중에 저희 팀원이 다루었던 대성동 자유의 마을을 차로 이동 중에 지나치며 보았는데 무척 신기했습니다.

 

※ 대성동 자유의 마을, 민간인통제선, 남방한계선, 군사분계선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포스팅을 참고해주세요

2020/11/13 - [남한과 북한] - [2020년 11월] 북한이탈주민 철책 훼손 귀순 사건

 

[2020년 11월] 북한이탈주민 철책 훼손 귀순 사건

2020년 11월 4일, 우리 군은 강원도 고성 전방에서 귀순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남성 1명의 신병을 확보했다. 이 남성은 최전방 철책을 넘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 과정에서 철책 일부가 훼손됐

thenorthkoreaherald.tistory.com

판문점에 도착하기에 앞서 JSA 경비대대의 안보견학관에서 코로나 문진표도 작성하고 판문점 역사를 다룬 영상 시청 및

견학 주의사항에 대한 브리핑을 약 30분 정도 들었습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긴장감이 감도는 공간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무척 실감이 되는 듯했습니다. 

 

JSA 안보견학관. 이곳에서 브리핑도 듣고 견학 마지막 순서로 전시관도 둘러보는 시간이 있습니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 이제 진짜 견학을 하게 됩니다(견학 안내소에 도착한 지 거의 두 시간 만에 견학...). 

저희는 자유의 집-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2)-도보다리-공동기념식수-장명기 상병 추모비-평화의 집-안보견학관의

순서로 견학을 진행했는데 견학 시간은 약 1시간 정도입니다. 

 

‘자유의집’은 판문점 내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북측 ‘판문각’에 대응하는 우리측의 최북단 시설로 남북 적십자사 간 연락 및 회담지원 업무를 하는 곳입니다. 이곳은 통일부가 관리합니다.
이곳에서 2019년 6월 30일 남·북·미 정상의 3자회동이 열리기도 하였습니다.

자유의 집을 통과하게 되면 그 유명한 푸른색의 회의실과 군사분계선 그리고 북한 측 건물과 북한 군인을 정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갔을 때는 북한군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유의 집을 통과하면 보이는 광경. 사진의 왼쪽 푸른색 지붕 건물이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T2)이고 정면의 회색 건물이 북한측의 '판문각' 건물입니다. 
하늘색 3개 동은 UN사가, 회색 지붕의 회의실은 북한측에서 관리합니다. 

저희는 T2의 내부를 견학하였는데 회의실 내부에서의 군사분계선은 효력이 없기 때문에 마음껏(?)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T2 회의실 내부의 탁자
T2 회의실 내부에서 촬영한 군사분계선 경계석. 이 경계석 우측이 북한 지역입니다. 

 

회의실 건물 견학을 마치고 우측으로 쭉 걸어가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산책을 했던 푸른색의 도보다리가 있습니다. 

언론에서 보았을 때는 꽤 길이가 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짧아서 의외였습니다. 이 다리는 군사분계선 남쪽에 위치한 중립국감독위원회와 정전협정 회의실 간 동선을 줄이기 위해 지어졌다고 합니다.

 

 

도보다리에서 다시 회의실 장소 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 심은 기념 소나무 식수가 있습니다. 

 

식수 뒤편으로 보이는 회색 건물은 북한측 초소로 9.19 군사합의 이전에는 무장을 한 경비병이 상주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빈 건물로 남아 있습니다.

식수를 보고 난 뒤에는 자유의 집 뒤편으로 이어지는 장병기 상병 추모비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장병기 상병은

1984년 11월 23일 소련의 관광안내원 마투조크가 판문점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망명을 시도할 때 발생했던 북한군과의 총격전에서 순직하였습니다. JSA 경비대대에서는 매년 11월 23일에 장병기 상병을 추모한다고 합니다. 

 

장병기 상병 추모비

 

추모비 뒤편에는 남북회담을 위해 세워진 우리 측 회담 시설인 '평화의 집'이 있습니다. 현재 이곳은 국정원이 관리하고 있으며,

2018년 4월 27일 남측 지역에서 개최된 최초의 남북정상회담도 이곳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평화의 집

판문점에서의 모든 견학을 마무리하게 되면 다시 JSA 안보견학관으로 이동해 전시관을 둘러보게 되면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됩니다. 

이동시간이 견학시간의 배가 넘었지만 매우 유익한 견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시관 내부에는 판문점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에 대해 이런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판문점 견학은 저희 팀원 모두에게 만족을 뛰어넘어 감동을 선사한 견학이었습니다.

견학을 계기로 평화통일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생각해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가 도래하길 바라며 이번 견학기를 마무리 합니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개비동산

 

 

 

2020년 11월 4일,

우리 군은 강원도 고성 전방에서

귀순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남성 1명의

신병을 확보했다.

이 남성은 최전방 철책을 넘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 과정에서 철책 일부가 훼손됐다.

최전방 철책은 3중으로 돼 있으며,

과학화 경계감시장비가 설치돼 있다.

군은 해당 부대에 대침투경계령인 '진도개'를

'하나'로 격상하고 수색작전을 벌였다.

신병을 확보한 장소는 GOP에서 상당히 남쪽이며,

신병 확보 과정에서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고 한다.

11월 10일, 김준락 합참 공모실장은

오전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

"GOP 작전의 특성상 GOP 종심에서 차단해서

봉쇄선 안에서 귀순자 신병을 확보한 것은

작전 절차대로 진행됐다고 보고 있다"며

경계 실패 논란을 일축했다.

 

 

1. 사건의 경위

11월 2일 22시,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미상 인원이

두 차례 포착돼 감시 경계태세 강화

11월 3일 19시, 북한 주민이 국군 경계초소의

철책을 넘는 장면이 포착된 후 당국이 진도개 단계 격상

11월 4일 오전, 군 당국이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수색작전을 실시하고 있다고 발표

11월 4일 10시, 북한 주민 1명의 신병 확보 발표

 

 

 

2. 과학화 경계시스템이란?

 

고성능 감시카메라를 비롯해

철조망에 깔린 센서거동수상자를 잡아내는 체계로,

사람이나 동물이 철책에 닿으면 센서가 울리며

5분 대기조가 즉각 출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현역 병력 부족으로 전방에 대규모 경계근무 투입이

제한되면서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구축됐다.

탈북 남성은 철책을 건드리며 남쪽으로 넘어왔지만

철책의 센서가 작동하지 않았다.

현재 군 당국은 전비태세검열단을 보내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국민의 힘 신원식 의원은

지난 6일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군이 최전방 철책의 센서 감도를

일부러 낮게 조정

귀순자의 월책 신호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시스템 자체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것으로 전해져

이 같은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군 관계자는 "보통 철책에 설치된 과학화 경계시스템은

매우 예민해 바람에 돌이 튕기거나

짐승이 건드려도 비상벨이 울린다"며

"때문에 부대 인원들이 자주 출동해

피로도가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군은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8일 국회 예산정책처의 2021년도 예산안 분석을 보면

군은 내년 경계시스템에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

내년도 도입할 CCTV에는 AI 기능을 적용해

인원과 선박을 자동으로 식별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

 

하지만 결국 과학화 시스템도 사람이 운용하는 만큼

대비태세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역 부족으로 과학화 체계는

앞으로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나,

과학화 체계도 만능은 아니기 때문에

지나친 의존을 경계해야 한다.

 

 

3. 대침투경계령이란?

 

[ 진도개 ]

국지적 위협 상황이 일어났을 시에

발령되는 경보 조치를 뜻한다.

숫자가 작을수록 높은 단계이다.

 

 

[ 워치콘, Watch Condition ]

대한민국과 미국의 합동작전 중 하나.

북한의 군사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일 것인가 하는 지표.

휴전 중인 '평상시' 한국의 워치콘은 4등급이다.

 

 

[ 데프콘, Defense Readiness Condition ]

위성, 정찰기, 전자전기 등으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되는 워치콘 상태를 참고해

전군에 발령되는데, 5단계로 나뉜다.

 

 

 

[ 충무 ]

전면전 대비 정부 총력전 전쟁 태세.

데프콘과 동일한 국가비상사태경보로,

충무 3종부터 1종까지 있다.

1953년 이후 한국에서는 발령된 적이 없다.

 

 

[ 인포콘, Information Condition ]

 

정보작전 방어 태세.

온라인 체제, 즉 북한의 사이버테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준비태세에 돌입.

 

4. 2012년 노크 귀순 사건

이번 사건이 일어난 강원도 고성군은

2012년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2012년 10월 북한군 병사 1명이

강원도 동부전선의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했는데,

철책을 넘어 한국군 GOP에 접근해 창문을 두드릴 때까지

군에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한 언론사에서는 이 사건에 빗대

이번 사건을 '숙박 귀순'이라고 명했다.

 

 

5. 북한이탈주민?

 

북한이탈주민(North Korea Defectors)

또는 탈북민이라고 부르며,

북한에서 경제적 궁핍을 이유로

자신의 나라에서 이탈해

대한민국 또는 제3국으로 망명한 난민을 가리킨다.

북한이탈주민은 대한민국 법률상의 용어로

북한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며,

북한을 벗어난 후 대한민국 이외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이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부터 여러 이유로

북한 주민들이 한국으로 탈출해 왔다.

초기에 북한을 탈출해

대한민국에 망명해 오는 사람은

대부분 정치적인 이유로 탈출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공군 조종사의 귀환은

'귀순용사'로 칭하여 대대적으로 선전됐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남북의 경제격차가 역전되고

대조적으로 북한에서는 만성적인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이후 탈북민의 성격은

정치적인 망명에서 경제난민의 성격으로 바뀐다.

이러한 흐름은 1990년대 중반에 들어

북한에서 대규모 자연재해로 인한

심각한 식량난으로 가속화됐고,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는

대규모 인원이 탈북을 감행한다.

 

탈북을 시도하다가 잡힌 주민과,

중국 등에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탈북자는

대부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다.

또한 국경수비대는 탈북하려는 주민을

체포하기 어려울 경우 사살한다.

탈북자들은 대체로 두만강을 넘어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로 탈출하는 방법을 쓴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 정부와의 관계를 중시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발견하는 대로 불법 입국자로서

투먼과 훈춘에서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협정을 체결해,

탈북자는 중국 내에서 숨어서 지내야한다.

 

중국 잠입에 성공한 사람의 대부분은

대한민국의 지원을 받거나

각국 대사관, 외국인 학교 등으로 도망쳐서

도움을 요청한다.

그 후 대부분이 남한으로 망명한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탈북자 수의 증가에 대비해

정착지원제도 정비 등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탈북자는 탈북동기, 신원, 위장입국 여부 등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조사받은 뒤에

탈북자 지원조사기관인 하나원에 보내져

12주 동안 사회적응 교육을 받고

이후에 취직, 주민등록, 임대주택알선 등

정착지원금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대한민국에 정착한 일부 탈북자들은

문화어 말투를 고치기 힘들어 하며,

이는 차별의 대상이 되거나

간첩으로 오인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재까지의 탈북자 중 가장 고위급 인사는

북한의 당 비서를 지낸 바 있는 황장엽이다.

그 외에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의 조카인

이한영도 널리 알려졌다.

 

 

5. 북한 이탈 주요 사례

 

1984년 11월 23일, 소련의 관광 안내원

바실리 마투조크

판문점을 달려서 남쪽으로 귀순한 사건이 있었으며,

북한군이 추격하며 총격을 가해

국군 병력과 상호 총격전을 벌여

사상자까지 났었던 전례가 있었다.

이 경우 국군 초병이 적탄에 맞았기 때문에

자위권이 성립됐다.

 

2012년 10월 6일, 북한군 하전사 1명이 상관을 살해하고

남북을 잇는 경의선 도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했다.

10대 후반의 귀순 병사는 총을 버리고

비무장상태로 우리 군 초소로 뛰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6월 5일, 중국 닝보 소재의

북한 식당 '류경식당'의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했다.

북한 사회에서 중류층에 속하는

종업원들이 주축이 된 사건으로,

이들은 밤에 식당을 몰래 빠져나온 뒤

차량으로 상하이로 이동해

다음날 새벽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탔다.

북한과 말레이시아는

무비자 협정을 맺고 있어서

북한 여권만 소지하면

출국에 문제가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6월, GP에서 벌어진 북한군 귀순 사건은

제2의 노크 귀순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귀순 과정에서 휴전선에서 5분간 손을 흔들고

GP 600m 앞에서 소리치기도 했으며,

톱으로 철책을 내려치는 등

진작 군부대에 도움을 요청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던 중 추진철책의 문을 바로 찼는데,

틈이 벌어지자 그 틈으로 탈북에 성공했다.

 

2017년 11월 3일, 조선인민군 육군 소속

오청성 하전사가 판문점을 넘어 귀순하다

이를 저지하려는 조선인민군 육군에게

5발의 총상을 당한 채로

국군에 구조된 사건이 있었다.

노크 귀순 사건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험난하게 귀순했다.

귀순 병사의 몸속에 30마리 이상의 기생충이 있어

북한의 열악한 실태와 위생 환경을 알 수 있었다.

열악한 의료 현실로 항생제 내성이 거의 없어서

약을 잘 듣는다는 점이

치료에 도움이 됐다고

이국종 교수 의료팀이 밝혔다.

현재는 재일교포 탈북자 출신

김주성 통일부 통일교육원 전문 강사와

함께 생활한다고 한다.

 

2019년 6월 15일, 북한 주민 4명이 탄 목선이

23사단 관할의 삼척항에서 발견됐다.

이후 선장을 포함한 두 명은 귀순 의사를 밝혔고,

두 명은 돌아가기를 원해

판문점을 통해 북한 측으로 귀환됐다.

낚싯배 수준의 조그마한 배를 가지고

탈북을 한 것이라

이를 자세히 탐지하기 위해서는

해상초계기가 가까이 접근해야 하는데,

한국 해군은 타국의 군함을 위협하지 않기 위해

5~9km 이내로는 접근하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서도 4km 이내로만

접근한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 정도의 배를 4km 거리에서 판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목선 최초 발견자가 산책 중인 주민이었고

우리 군과 해경은 목선이 항구에 정박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경계 실패 논란이 일었다.

 

2020년 7월 19일, 북한이탈주민이

해병대 제2사단의 경계망을 뚫고

강화도 북한 최전방의 철책 밑을 통과하여

한강 하구를 헤엄쳐서

월북한 사건이 있었다.

2017년 수영으로 도강해 강화도를 통해

남측으로 내려왔었으며,

한국에 정착한 뒤 직장에도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7월 26일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악성비루스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 도주자가

3년 만인 7월 19일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개성시로 귀향하는

비상사건이 발생했다"며

"개성을 완전히 봉쇄하고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전환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건은 북한군과 국군 모두의 경계 실패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6. 월북 사례

 

자발적 의지로 북한에 영주를 목적으로

넘어가는 것을 말하며,

외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입북(入北).

자유 의지가 아닌 납북(拉北),

북한에 잠깐 갔다 오는 방북(訪北)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적 행위로 간주되지만,

북한에서는 의거입북이라는 말로 미화된다.

 

1977년 10월 육군 20사단 대대장 유운학 중령이

무전병을 권총으로 위협해 강제로 데리고 월북

 

1978년 6월 육군 12사단

정보장교 이준광 소령의 월북

 

1981년 8월 육군 1사단 GP 담당

중대장 석정현 대위의 월북

 

1984년 6월 육군 22사단 소속 조준희 일병이

소총과 수류탄으로

동료 병사 15명을 죽이고 월북

 

1980년대 후반 빚 독촉에 시달리던

자동차 운수회사 사장이 26살 어린 경리와

오스트리아를 통해 월북

 

1996년 모 부사관이 남한에서 강력범죄를 일으켜

군사재판을 받게 되자 월북

 

2005년 4월 13일 57세의 황홍련이 만취 상태에서

소형 어선을 타고 월북,

18일 남한으로 송환

 

2009년 30대 남성이 철책을 자르고 월북

 

2010년 현직 의사 포함 4명이 스웨덴을 경유해

월북을 기도하다 적발됨

망명신청서에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문구를 적었으나,

북한에서 '사회적 기여도가

낮아서 곤란하다'는 답을 받음

 

2013년 9월 16일 40대 남성이 일본에서 강제 추방된 뒤

임진강에서 부표를 매달고 월북하다

국군 초병의 총탄에 맞고 숨짐

 

2014년 11월 말 월북했던 50대 남성이

12월 26일 판문점 통해 귀환,

이후 2015년 1월 두 번의 월북을 시도하다 구속됨

 

2015년 6월 22일 30대 남성이 생활고를 이유로

페트병을 타고 월북을 시도하다가

당국에 체포됨

 

2018년 8월 7일

7월 22일에 월북했던 30대 남성이

판문점을 통해 귀환됨

 

2020년 9월 22일 소연평도 인근에서

어업 지도 활동 중이던 공무원이 실종됐다가

북방한계선 이북에서 북한군에 피살됨

해당 공무원이 조류 반대방향인

북한해역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월북이라는 의견과

월북이 아니라는 의견으로 나뉘어 논란이 지속 중

 

 

 

6. 남북의 경계선

[ NLL과 SLL ]

NLL : Northern Limit Line, 북방한계선

SLL : Southern Limit Line, 남방한계선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져

동서로 그은 선을 북방한계선,

남쪽으로 2km 떨어져

동서로 그은 선을 남방한계선이라고 한다.

이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

4km를 비무장지대라고 한다.

 

정전협정에서는 남북한 간

육상경계선만 설정했는데,

이후 1953년 8월 30일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던 마크 클라크가

한반도 해역에서의 남북 간의 우발적 무력충돌

발생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서해상에 당시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영해 기준 3해리에 입각해

북방한계선을 설정했다.

 

남한한계선과 군사분계선 사이에는

'전초'로 불리는 GP가 있다.

GP와 GP 사이에 다시 추진철책을 만들어

남과 북이 서로의 군사 활동을 감시한다.

남방한계선 남쪽에는 다시

군사시설 보호와 안보를 목적으로

5~20km의 민간인통제선이 설정돼 있다.

 

 

[ DMZ,

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 ]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되며,

일단 비무장지대의 설정이 결정되면,

이미 설치된 것을 철수 또는 철거해야 한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군사분계선이 확정되고

이에 따라 현재의 비무장지대가 설정됐다.

동년 8월 비무장지대에

한국주민 거주의 '자유의 마을'과

북한주민 거주의 '평화의 마을'이 생겼다.

 

비무장지대의 출입은

군사정전위원회의 허가가 있어야 하며,

특히 판문점은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단이 함께 있는

쌍방 공동 경비의 비무장지대로서

쌍방의 경비병이 군사분계선을 자유로이 드나들었으나

1976년 북한군의 도끼 만행사건 이후 금지되고 있다.

 

 

[ 자유의 마을(대성동 마을) ]

유일하게 DMZ 내에 있는 마을로,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에 위치한다.

군사분계선과 마을 간 거리는 약 400m이며,

1953년 정전협정의 '남북 비무장지대에

각각 1곳의 마을을 둔다'는 규정으로 인해 조성됐다.

대성동 초등학교에서는

JSA에서 근무하는 미군이

직접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자유의 마을은 UN의 통제를 받는 구역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납세와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다.

이러한 혜택의 악용을 막기 위해

마을 주민 중 남자는 외부 여자와 결혼할 수 있으나

여자는 외부 남자를 마을로 들여 결혼할 수 없다.

결혼 외에는 외부인의 입촌이 어려워

주로 예전부터 살던 주민과 그 자손이 살고 있어,

예전부터 자유의 마을 인구수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북한에 체제 선전을 위해

'북향'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집 안이 매우 춥다고 한다.

또한 주택에 대한 주민의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보수를 할 수도 없으며,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문산읍까지 나가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더불어 24시~5시까지가

통행금지 시간으로 정해져 있고

연 8개월 이상을 의무적으로 거주해야 한다.

 

 

[ MDL,
Military Demarcation Line,
군사분계선 ]

두 교전국 사이에 협정에 의해

구획된 군사 활동의 경계선으로,

보통 휴전이 성립된 시점의 전선을

분계선으로 삼는다.

한국의 경우 군사분계선은 정전협정에 의해

육상에 그어진 선,

휴전선을 의미한다.

상호 간에 이 선을 침범, 적대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

휴전선 설정 전에 군사분계선을 통과했고,

지난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군사분계선을 직접 걸어서 넘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앞에서 만나면서

남북 정상의 첫 군사분계선 조우가 이뤄졌다.

특히 김정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이동했는데,

북한 최고 지도자가 남한 땅을 밟은 최초의 일이었다.

 

 

[ 휴전선과 38도선 ]

휴전선은 6ㆍ25전쟁이 1953년 7월 27일 22시에

휴전됨으로써 한반도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설정된 것으로,

휴전 또는 정전 시 대치하고 있는 양군의 태세를

고정화시키거나 전선에서 병력을 분리시키기 위해서

설정하는 기준선이다.

군사분계선의 다른 말이다.

 

38도선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ㆍ소 양국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점령한 군사분계선으로,

정전협정이 성립되기 전까지 존재했던

정치적 경계선이다.

 

 

 

[ CACL,
Civilian Access Control Line,
민간인통제선 ]

군사 작전상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설정한 선.

전선 남방 5~20km의 범위이다.

 

 

[ JSA, Joint Security Area,

공동경비구역 판문점 ]

비무장지대의 군사분계선 상에 있는 구역으로,

 JSA 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해

북한 측의 판문각, 유엔 측의 자유의 집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 주한미군,

유엔군, 조선인민군이 주둔하고 있다.

 

1971년 8월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

1972년 7ㆍ4남북공동성명

남북의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던 장소이다.

20196월 이곳에서 남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됐다.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와

북한의 황해북도 개성특별시 판문구역 판문점리에 위치한다.

 

 


[ 참고자료 ]

김주영, (2020).  "軍 "동부전선 귀순자 신병확보, 작전절차대로 진행돼"", 11월 10일.

이원준, 이우연 (2020). "서욱 "北주민 월책, 경계실패 아냐… 노크귀순과 달라"(종합)", 뉴스원, 11월 9일.

이주원, (2020). "北 귀순 사건으로 드러난 과학화 경계시스템 민낯… 경계작전 문제 없나", 서울신문, 11월 9일.

정빛나, (2020). "'귀순 추정' 북한 남성 1명 10여시간만에 붙잡혀… 군 철책 뚫려(종합)", 연합뉴스, 11월 4일.

 

위키백과, ko.wikipedia.org, '북한이탈주민, '진도개', '데프콘', '워치콘', '충무', '인포콘' (접속일: 2020년 11월 10일).

나무위키, https://namu.wiki,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사건', '월북', '탈북' (접속일: 2020년 11월 10일).

네이버 지식백과, terms.naver.com, 'NLL', 'SLL', 'DMZ', 'MDL', 'CACL', 'JSA', '휴전선', '38선' (접속일: 2020년 11월 10일).

시사상식사전, terms.naver.com/list.nhn,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접속일: 2020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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