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팅은 <북한의 권력 기구>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북한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단체 및 외곽 기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집단주의적 사고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북한은 주민들에게 다양한 외곽 기구 조직에 속하게 함으로써 평생에 걸친 사회화 과정 및 조직 생활을 이행하고 당 정책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북한의 사회(시민)단체와 외곽 기구는 우리나라에서처럼 정부·기업을 감시하거나 이익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성격이 아닌

모두 조선노동당의 지도를 받으며 보조적 기능을 수행하는 단체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북한의 주요한 외곽 기구 중 근로단체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북한의 외곽 기구. 출처: 북한정보포털


1. 근로단체 

 

(1).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창립 72주년 기념 행사. 출처: 조선중앙통신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로고. 출처: 위키백과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이하 청년동맹)은 1946년 1월 17일 '북조선민주청년동맹'이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고, 

1951년 '남조선민주청년동맹'과 통합되어 '조선민주청년동맹'이 되었다. 이후 1946년 5월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으로

개칭되었다가 김일성 사후 1996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바뀌었다. 

2016년 8월 27~28일에 열린 청년동맹 9차 대회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청년동맹은 북한 주민 만 14세부터 30세에 이르는 청년 학생층이 의무적으로 가입되어 있는 북한 최대의 청년 근로단체이자 

사회단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청년동맹원의 수는 약 50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만 14세가 되면 청년동맹에 자동적으로 가입하게 되는데, 이때 교내 군사조직인 붉은청년근위대에도 속하게 되며 그 일환이라는 상징으로 왼쪽 가슴에 청년동맹 휘장을 달게 된다.

 

* 붉은청년근위대: 1970년 김정일 지시로 창설된 학생군사조직. 만 14~16세의 남녀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현재 약 100만 명으로 추정.

 

청년동맹 휘장 '쌍상'. 출처: 데일리NK

 

청년동맹의 중앙조직으로 조선노동당의 전문부서 중 하나인 근로단체부의 지도를 받는 청년동맹 중앙위원회가 있으며,

그 산하에 도·직할시위원회, 시(구역)·군위원회와 각 단위별 위원회(공장, 기업소, 교육문화, 보건기구, 인민군대 및 기타)가

조직되어 있다.

 

청년동맹은 북한의 근로단체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취급을 받을 뿐 아니라, 당·군과 함께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3대 보루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혁명과 건설에서 발휘되는 청년층의 역할과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동당 규약 제9장에서는 청년동맹을 "혁명과업을 직접 계승하는 직접 계승하는 청년들의 혁명적 조직이며

노동당의 전투적 후비대"로 규정하고 있다.

 

청년동맹이 수행하는 기능은 크게

△사상교양단체로서의 사업 △당의 후비대로서의 사업 △경제건설에의 동원 △당의 통일 및 대남 정책 지원 등이며, 주로 

북한 사회주의 건설에서 어렵고 힘든 일을 맡아서 돌격대로 나서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특히 1970년대 중반 이래 여러 건설현장에서 청년돌격대, 청년작업반, 청년직장 등의 형태로 동원되어 왔고,

최근 9월 북한 함경남북도 지역의 수해 복구 작업에도 청년동맹이 동원되었음이 보도되었다(조선중앙통신). 

 

청년동맹은 북한의 중앙 정치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현 김정은 체제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자 조선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또한 청년동맹의 전신인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에서 1980년부터 부위원장, 위원장 등의

활동을 10년 이상 한 인물이다. 

 

(2). 조선직업총동맹

 

2016년에 개최된 조선직업총동맹 제7차대회. 출처: 조선의 오늘

조선직업총동맹(이하 직총)은 조선노동당 당원이 아닌 30세 이상의 모든 직장의 노동자와 기술자, 그리고 사무원들이 해당되며

동맹원의 수는 약 16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945년 11월 30일 김일성 지시에 의하여 ‘북조선직업총동맹’으로 창립되었으며, 당시 회원은 39만 900명이었다. 1947년 5월에

‘세계직업연맹’에 가입하였으며, 6·25 전쟁 중인 1951년 1월 20일 북한의 ‘북조선직업총동맹’과 남한의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이 통합하여 ‘조선직업총동맹’으로 개칭하였다. 당시 회원은 59만 3,978명이었다.

 

1964년 6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직총은 완전한 사상교양단체로서 사업체계를 다시 세우고, 직총 제6차 대회(1981. 11. 27∼31)에서 ‘사상교양일층강화’, ‘김일성·김정일 부자에 대한 충성’을 의제로 채택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한에서의 직총의 임무는 크게

△산업의 복구와 증산운동에의 참가 △노동 규율의 엄수와 생산 능률의 제고 △노동자 권익 옹호와 노동 조건의 감독 △노동자들에 대한 정치·문화 교양과 같은 당 정책 교양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직총은 노동자들의 권익 실현을 위한 순수한 노동자 단체가

아니라 북한 조선노동당의 적화혁명노선을 노동분야에서 수행하는 전위대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직총의 산하에는 도·직할시 및 시·군 직맹위원회 등 하부조직과 금속화학공업, 전기석탄공업, 경공업 및 상업, 기계공업, 수산, 교통, 체신, 문화, 보건 등 산업별 조직을 두고 있다. 

 

(3). 조선농업근로자동맹

 

2016년에 열린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제8차대회. 출처: 조선일보

조선농업근로자동맹(이하 농근맹)은 북한의 농업 관련 분야 종사자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1945년 12월 8일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의

분맹으로 북조선농민동맹(1946.1.31.)이 조직되었으나 1951년 2월 11일, 남조선노동당 외곽단체였던 전국농민조합총연맹과

형식적으로만 통합, 조선농민동맹으로 되었다.

 

이후 노동당 제4기 제9차 전원회의(1964.6.)에서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1964.2., 노동당 제4기 제8차 전원회의)가

발표되면서 개인자영농이 없어진 사회 조건을 고려한다는 취지로 1965년 3월 25일 농근맹이 결성되었다. 현재 북한은 

북조선농민동맹이 조직된 날을 농근맹 결성일로 삼고 있다.

 

농근맹의 가입원은 농·축산 근로자, 농업기관의 사무원, 국영 농장 및 농촌 경리 복무 노동자 및 사무원 중 노동당원이 아닌

만 30세 이상이 대상이 된다. 현재 농근맹에 가입된 인원은 약 130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농근맹의 성격은 농근맹 규약에서 '당과 우리나라 농업 부문의 근로대중을 연결하는 안전대'로 규정하고 있어

농민층에 대한 당노선과 사상교양을 규율·통제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이에 따른 농근맹의 주요 임무로는

 

△사회주의 농촌 건설 촉진 △농촌에서 사상·기술·문화 3대 혁명 적극 추진 △도시와 농촌 간의 차이, 노동 계급과 농민 간의 

계급적 차이를 점차 없애기 위한 투쟁 △비당원 사상교양사업 등이 있다. 이 중 노동 계급과 농민 간의 차이를 줄인다는 것은 

노동자들에 비하여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는 농민들로 하여금 조직생활을 시켜서 ‘노동계급화’하려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4).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탈북자 규탄 항의 집회에 동원된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원들. 출처: 데일리NK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이하 여맹)은 북한 정권이 해방 후 인구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의 사상을 공산주의적으로

계몽·개조하고 그들을 근로전선에 동원하기 위해서 여성해방이라는 명분 하에 결성한 단체이다. 그러나 여성의 지위 향상보다는 

당의 주요 과업을 수행하는 역할만을 강조하고 있어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영향력 행사는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11월 18일 '북조선민주여성동맹'으로 창립돼 1951년 1월 개최된 남북조선여성동맹 합동중앙위원회에서 형식적으로 남조선 여성단체와 통합, '조선민주여성동맹'으로 되었다. 그 후 오래동안 '조선민주여성동맹'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하다가 

2016년 11월 18일 조선민주여성동맹 제6차대회에서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으로 개칭되었다. 

 

여맹의 가입원은 조선노동당 당원이 아니면서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30세 이상의 전업주부가 대상이다.

여맹은 다른 노동당 외곽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노동당의 정책을 관철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이를 위해 가맹원 등에 대한 사상교양을 통해 정치의식과 문화수준을 높이는데 여성들을 동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주요 활동 방향은 모든 분야에서 낡은 생활양식을 없애고, ‘사회주의적 생활양식’을 확립하는 데 힘쓰고, 여성들의 사상혁명을 강화시키며, 어린이를 '혁명의 후비대'로 양성하며, 인민군 원호사업에 참여하는 것 등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른 여맹의 임무는

△건설 및 현장과 군대 지원 △사회주의 건설에 여성들을 조직·동원 등이 있다.

 

2012년 들어 북한은 11월 16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였는데, 이는 김정은 체제에서

여맹의 역할을 상기시키는 데에 의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 기타 단체

 

(1).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는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 출처: 연합뉴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는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의 외곽 기구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미수교 국가들과 

정치·경제·문화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1994년 5월에 설립되었다.

 

형식상 민간기구의 성격을 띠고 있는 대외정책 기구이지만,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의 통제 하에 실질적으로

대남 당국 및 민간 협상을 전담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기본적으로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창구로서

유력 외국 인사를 북한으로 초청하고, 국제학술회의에 참여하는 등 북한의 대외 이미지 개선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남북 간의 각종 민간교류와 경협업무의 집행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금강산관광사업,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에서 큰 정치적 비중을 갖고 있는 사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아태의 대표적 활동으로는 1995년 4월 평양에서 개최된 '평양국제체육문화축전' 행사 주관, 1998년 5월 리틀엔젤스 평양 공연 실현, 1998년 6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방북 초청 및 금강산관광사업 등을 주관하였다. 

 

아태 산하에 정치, 경제, 문화, 관광, 종교 등 부문별 부서들과 연구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2). 조선적십자회 

 

북한이 발행한 적십자 창설 100주년 기념 우표. 출처: 연합뉴스

 

2012년 8월 홍수 피해를 입은 평안남도 지역에서 지원 활동 하는 조선적십자회 요원. 출처: VOA

조선적십자회는 1946년 10월 18일 '북조선적십자회'로 결성되었으며, 북한 정권 수립 후 1948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956년 5월 11일에는 국제적십자사연맹에 가입하였으며, 1971년에는 대한적십자사의 ‘남북한 이산가족찾기’를 위한 회담 제의를

받아들여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렸다.

 

1차 남북적십자회담. 출처: 연합뉴스

또한 1984년에 한국이 큰 수재를 입었을 때 조선적십자회의 식량 제공은 남북한 첫 물자교류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북한의 식량난이 급격히 어려워진 상황에서 조선적십자회가 대한적십자사에 구호물품의 제공을 요청해 옴에 따라 대한적십자사가 1995년 말부터 식량·비료·의약품 등 물자들을 제공하였다.

조선적십자회는 명목상으로 “국제적십자 조약에 기준하여 인민들의 보건·문화생활의 향상과 전쟁 및 재난시의 피해자 구제 사업을 실시한다”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 노동당의 외곽단체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인도주의로 포장한 정치적 성격이 짙은

비전향장기수 송환, 군사훈련 중지 등도 주장하고 있다.


(3). 조선과학기술총연맹 

 

조선과학기술총연맹 주관으로 2019년에 개최된 우주과학기술토론회. 출처: <<노동신문>>

조선과학기술총연맹은 북한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기능공들이 총망라된 사회단체로 산하 부문별 협회와 연계하여 

기술혁신현상 모집, 과학기술발표회, 전시회 개최 등을 통해 대중적 기술혁신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다른 나라 과학기술단체들 및 국제기술기구들과의 대표단 교류, 국제과학기술토론회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과학자 개인 초청 강의를 알선하고, 과학기술 도서 및 자료 교환 등과 같은 과학기술 교류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946년 4월 '공업기술협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으며, 이후 1951년 10월 '조선공업기술연맹'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86년 1월에 공업기술뿐만 아니라 농업을 비롯한 자연과학 부문의 협회와 확회를 망라하는 지금의 단체로  확대·개편되었다. 

산하에는 조선기계공업협회, 조선전력공업협회, 조선전자자동화협회를 비롯한 협회들과 조선기계학회, 조선물리학회를 비롯한

10여 개의 학회들이 속해있다. 

 

북한은 조선과학기술총연맹이 각종 과학기술단체의 육성과 지원,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참여를 진작·독려하기 위한 것으로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북한 당국이 자국 내 과학기술자들을 지도·통제하는 조직으로 이 연맹을 활용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국가정보원. (2019). 「북한법령집. 상」. 

통일교육원. (2020). 「2020 북한이해」. 

통일교육원. (2020).「북한 청소년의 생활과 문화」. 

통일교육원. (2016). 「북한 지식 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조선사회주의여성동맹',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조선적십자회', '조선직업총동맹'. 2020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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